신비로운 초록숲 대신 드문드문 나타나는 소박한 마을의 정경이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 아래쪽 사면을 따라 좁은 계단 모양으로 일구어진 밭이 내려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건너편의 커다란 산의 사면 전체가 좁은 계단식 밭이었다. 중국에서 다랑이 논으로 유명한 용정을 포기하기하면서 마음이 아렸는데 히말라야에서 이렇게 거대한 스케일의 계단식 밭을 보게될줄은 미처 몰랐다. 사실 논에 물이 차서 햇빛을 거울처럼 반사하지 않는다면 밭보다 멋질 것도 없다. 산의 경사가 너무 가파른 곳에는 사다리 계단이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이어주었다. 윗 마을에 사는 아이는 학교에 가기위해 저 사다리를 오르내릴 것이다.
바람이 누른 보리밭을 쓰다듬고 지나간 자리엔 유채화 붓터치같은 결들이 그려진다. 대여섯채의 돌집이 자리한 작은 마을을 만났을땐 그동안 유지하던 페이스 조절이나 순위를 뒤로하고 한참을 멈춰서서 바라보고 사진을 찍었다. 깊은 산중까지 도시의 건축자재를 옮겨오기는 어려운지, 이 마을의 지붕과 앞마당은 모두 이 산에서 흔하게 나는 검은 운모석으로 지어져있었다. 여느 가난한 마을이처럼 슬레이트나 양철 집이 초라한 기색을 풍기는 대신에 자연석으로 지어진 오막집이 히말라야의 산과 운치있게 어우러져 지나치는 등산객의 감흥을 돋구었다. 이 곳 사람들이 무거운 돌로 집을 짓고 매번 보수하느라 느낄지도 모를 고단함을 헤아리기엔, 등산객의 경쾌한 걸음은 속도가 좀 빠르다.
둘쨋날도 하늘까지 이어진 오르막을 걷고 걸어 모든 힘을 탈탈 털어쓰고서야 숙소가 있는 촘롱 마을에 도착하였다. 하루종일 맑았기때문에 모자와 스카프와 가디간으로 둘둘 말고 다닌 나는, 남자동행은 알 리 없는 고통- 더위와 분투하는 이중고 속에 트래킹을 완보하였다. 또한 동행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한지라,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고도 애썼다. 한번도 먼저 쉬자고 하지않았고 지친 모습을 보이기 싫어 표정 관리까지 했다. 그럼에도 따사로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하염없이 걷다보면 정신은 저 혼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로 마실 나가고, 얼굴근육은 긴장을 잃고 중력의 존재를 시각적으로 증명하게된다. 그러다, "고스트씨, 힘드시죠?" 동민씨 한마디에 화들짝 정신이 들어 눈에 반짝 총기를 넣고 입꼬리를 끌어올려 활기차게 대답하는 것이다. "아니요오-." 하지만 다 티났을 것이다. 당연히 그랬겠지.
우리 숙소는 이번에도 마을 가장 꼭대기에 있단다. 무거운 발을 계단 위로 꾸역꾸역 들어다놓는데 어디선가 신나게 재잘대는 하이 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저쪽 벼랑에서 머리가 쏙 올라왔다. 젊은 한국인 여자 한명이 포터 명을 대동하고 나타나 길에 합류했다. 내겐 초면인데 경이와 동민씨가 반갑게 인사한다. 산촌다람쥐에서 본 적이 있단다. 그러고보니 우리랑 같은 날에 여자 4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트레킹을 시작한다고 들었다. 그 팀은 우리와 다른 지점에서 시작하여 둘쨋날 숙소부터 여정이 겹쳐지게 된 것이다. 내가 알기론 우리가 걸어온 코스가 가장 무난한 길이었다. 즉 이 아가씨가 걸어온 길의 난이도가 더 높다는 뜻이다. 방금 그 아가씨가 올라온 벼랑을 내려다보니 가파른 경사를 따라 계단이 보이지 않는 저 멀리까지 내리닿아있었다. 우리가 걸었던 오르막보다 훨씬 힘든 길이었다. 그런데 이 아가씨는 숨도 안차는지 깔깔깔 웃으며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있다. 발걸음도 가볍다.
믿을수 없었다.
바람이 누른 보리밭을 쓰다듬고 지나간 자리엔 유채화 붓터치같은 결들이 그려진다. 대여섯채의 돌집이 자리한 작은 마을을 만났을땐 그동안 유지하던 페이스 조절이나 순위를 뒤로하고 한참을 멈춰서서 바라보고 사진을 찍었다. 깊은 산중까지 도시의 건축자재를 옮겨오기는 어려운지, 이 마을의 지붕과 앞마당은 모두 이 산에서 흔하게 나는 검은 운모석으로 지어져있었다. 여느 가난한 마을이처럼 슬레이트나 양철 집이 초라한 기색을 풍기는 대신에 자연석으로 지어진 오막집이 히말라야의 산과 운치있게 어우러져 지나치는 등산객의 감흥을 돋구었다. 이 곳 사람들이 무거운 돌로 집을 짓고 매번 보수하느라 느낄지도 모를 고단함을 헤아리기엔, 등산객의 경쾌한 걸음은 속도가 좀 빠르다.
둘쨋날도 하늘까지 이어진 오르막을 걷고 걸어 모든 힘을 탈탈 털어쓰고서야 숙소가 있는 촘롱 마을에 도착하였다. 하루종일 맑았기때문에 모자와 스카프와 가디간으로 둘둘 말고 다닌 나는, 남자동행은 알 리 없는 고통- 더위와 분투하는 이중고 속에 트래킹을 완보하였다. 또한 동행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한지라,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고도 애썼다. 한번도 먼저 쉬자고 하지않았고 지친 모습을 보이기 싫어 표정 관리까지 했다. 그럼에도 따사로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하염없이 걷다보면 정신은 저 혼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로 마실 나가고, 얼굴근육은 긴장을 잃고 중력의 존재를 시각적으로 증명하게된다. 그러다, "고스트씨, 힘드시죠?" 동민씨 한마디에 화들짝 정신이 들어 눈에 반짝 총기를 넣고 입꼬리를 끌어올려 활기차게 대답하는 것이다. "아니요오-." 하지만 다 티났을 것이다. 당연히 그랬겠지.
우리 숙소는 이번에도 마을 가장 꼭대기에 있단다. 무거운 발을 계단 위로 꾸역꾸역 들어다놓는데 어디선가 신나게 재잘대는 하이 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저쪽 벼랑에서 머리가 쏙 올라왔다. 젊은 한국인 여자 한명이 포터 명을 대동하고 나타나 길에 합류했다. 내겐 초면인데 경이와 동민씨가 반갑게 인사한다. 산촌다람쥐에서 본 적이 있단다. 그러고보니 우리랑 같은 날에 여자 4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트레킹을 시작한다고 들었다. 그 팀은 우리와 다른 지점에서 시작하여 둘쨋날 숙소부터 여정이 겹쳐지게 된 것이다. 내가 알기론 우리가 걸어온 코스가 가장 무난한 길이었다. 즉 이 아가씨가 걸어온 길의 난이도가 더 높다는 뜻이다. 방금 그 아가씨가 올라온 벼랑을 내려다보니 가파른 경사를 따라 계단이 보이지 않는 저 멀리까지 내리닿아있었다. 우리가 걸었던 오르막보다 훨씬 힘든 길이었다. 그런데 이 아가씨는 숨도 안차는지 깔깔깔 웃으며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있다. 발걸음도 가볍다.
믿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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