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넥스트 콘서트에 다녀왔다.
금요일 밤에 가요대전을 보다가 우연히 넥스트 콘서트가 다음날이고, 티켓이 매진되지 않아 현장구매도 가능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랴부랴 티켓을 구해서 고려대로 향했다.
우려와는 달리 화정체육관 앞은 인파로 빼곡했다. 스탠딩석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서 입장하고 있었고 좌석 관객들이 오들오들 떨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캄캄했지만 관객들의 연령대가 제법 높다는건 알수 있었다. 빈소 조문때는 내 또래가 많더니 콘서트 장에는 어머님들....이라고 부르면 실례일테고 이모님들이 대부분이셨다.
얼른 신해철의 데뷔년도를 계산해보았다. 86년 대학가요제니까(잘못 알고 있었다) 지금 체육관앞에 계신 어머님들이 당시에는 십대 중반에서 2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어머님, 아니 이모님들 왼쪽 팔뚝에는 하나같이 몽끌레어 와펜이 붙어있어서 수십년 전의 어린 팬들이 이제는 여유로운 중년이되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었다. 나는 잘못 온 파티 손님처럼 불안해져서 필사적으로 젊은 관객을 찾아 눈을 돌렸다. 큰 언니 뻘로 추정되는 분들도 계시고, 가끔은 내 또래, 그리고 의외로 20대 초중반의 여자들도 보였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내가 어디가서 어리다고 하겠나. 엑소 콘서트였다면 아줌마가 물흐린다고 팬들한테 볼멘소리 들을텐데 말이다. 그 친구들 눈에는 여기서 어린척 하고 있는 나나 몽크레어 입은 이모님들이나 도찐개찐이겠다.
공연을 앞두고 여자 화장실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지루하게 기다려 화장실 입구까지 다다랐을 무렵, 흐느낌이 들렸다. 이모님 한분이 울고 계신다. 언니 나 어떡해, 이러다 두시간 내내 통곡하고 가겠어, 하는 이모님을 옆에 계신 언니분이 다독여주신다. 얼핏 '갱년기라서..'라는 문장을 들은 것 같았다.
나로 말할것 같으면, 울 마음 따위는 없었다. 갱년기가 한참 먼 나이라서가 아니라 즐기러 왔기때문이다. 신해철이 공들여 준비한 콘서트라고 했다. 추모하지 않을테다. 나는 화장실 차례를 기다리면서 내겐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이 될 넥스트 공연을 마음껏 즐기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공연은 "세계의 문" 으로 시작되었다. 중학생 시절 아이와 워크맨에(소니사러 용산갔다가 아이와 강매당함) 이어폰을 끼워서 수도 없이 돌려듣던 곡을 직접 듣는다. 지금 내앞에서 김세황이 복잡하고 화려하기 그지 없는 멜로디를 달음박질하고 테이프 껍데기에서 이름만 보았던 이수용 김영석이 베이스와 드럼을 연주한다. 감개무량하다. 신해철의 목소리는 녹음으로나마 웅장하게 울려퍼진다. "웰컴 투더 월드 위 메에잇-"
그러자 나도 모르게 "홈오토매이션 시스템즈 뤠디~".
입이 기억하고있었다.
주변 관객들은 얌전하게 서있는데 나 혼자 신이 났다. 몸은 들썩들썩, 입에선 저절로 가사가 쏟아진다. "아직도 세상을 보이는대로 믿고 편안히 잠드는가 빠라빠라빠빠~"
특히 이부분 정말 불러보고 싶었다. "발전이란 무엇이며 진보란 무엇이고 누굴위한 발전이며 누굴위한 진보인가!!!!!!!!"
아, 죽인다.
이젠 음침하게 중얼거릴 차례
"이제 약속된 최후다. 미래의 대환상속에 병든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
그리고 비통하게 외쳐보자
"월드 위 메에~~~~잇" (캔유씨월게링클로투디엔-)
세계의 문을 직접 들은 것만으로도 콘서트 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이번엔 바닥을 울리는 쿵쿵 소리에 관객들이 술렁인다. 그렇다, 그분이 오신다.
유희열은 라디오 천국에서 넥스트 공연이 무서웠다고 말한적이 있다. 신해철은 무슨 교주고 뒤에 (흑)기사들이 나오고 불꽃 나오고 종교집단 같고 그러다가 심장 뺄 것 같았다나. 겁쟁이 토이남이여, 라젠카님을 영접하라.
"라-젠-카, 세-이버스"
이 순간 이곳은 부흥회장이다. 악이 득세한 세상을 당당히 가로지르는 선율 앞에 관객은 신도로 변신하고 피할수 없는 운명의 예감으로 고조된다. 이젠 나아갈수 밖에 없다. 영혼기병 라젠카가 출격한다.
게스트 보컬인 신성우씨가 이따금씩 마이크를 관객에게 내미는데 관객 노래 소리가 잘 안들린다. 옆에서 경이가 귓속말을 한다.
"사람들이 노래 잘 모르네"
설마 그럴리가. 갑자기 깜빡한거아니겠어. 우리가 얼마나 기억할게 많은데 잠깐 어물거릴수도 있는거지. 공과금도 내야돼, 친척들 생일도 챙겨야돼, 회사도 다녀야돼...사는게 얼마나 바쁜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너무 바빠서 미용실 갈 시간이 없어. 일부러 머리 기르는게 아니라 그냥 길어진거야. 트리트먼트용 헤나를 하는것도 힘들어. 긴머리에 혼자 헤나 반죽 바르는거 어렵다니까. 귀찮은데 머리는 왜 자꾸 길고 그러..냐면 헤드뱅잉을 하려고 그랬나보다. 비트에 고개가 내려 꽂히고 그때마다 머리카락이 출렁인다. 라젠카 노래에 맞춰 고개를 쿵쿵, 머리카락 찰랑찰랑. 아, 헤나하길 잘했어.
신해철은 노래를 잘 못하는 락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을 보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신해철은 그만의 특색을 가진 훌륭한 락커였던 것이다.
공연에는 뛰어난 가수들이 게스트로 등장하여 넥스트의 명곡을 불러주었다. 그런데 신성우, 홍경민, 이수.. 최고의 보컬리스트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아쉬웠다. 낮고 분위기 있는 저음, 드라마틱한 곡 해석과 표현, 고음에서 가늘게 찢어지는 불안한 발성이 자꾸 그리웠다.
태그 : 넥스트




덧글
진짜 글로라도 다녀온것 같이 느끼게 해주셔서 감솨 ㅠ.ㅠ